군남의 글/건강칼럼

[스크랩] 기인으로 알려진 여인들

군남 2018. 8. 31. 13:15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시기에 조용히 세상에 나타나 희망을 던져 준 인물들 가운데 두 여인을 빼놓을 수 없다고 봅니다.   영웅을 기다리던 암울한 삶에 혜성처럼 등장하는 남자들이 있었다면 조용히 세상을 밝힌 여인들의 공덕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남존여비의 사상이 우리들의 의식에 깊숙히 박혀있기에 감히 여인을 칭송한다는 것은 아직 어려움이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롤 존립토록 한 것은 조용히 삶을 밝히는 여인들의 삶의 흔적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서양보다 남존여비 사상이 깊숙히 뿌리 박힌 동양입니다.   역사적 주요 인물의 활동상은 대부분 남자 위주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의 활동상은 역사의 뒷면에 가려져있지만 어찌보면 남자들보다 더 위대한 움직임이 있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훌륭한 남자를 만들어 세상을 밝히도록 끊임없는 가르침 및 조언을 통해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고 살기 좋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여성이라는 존재는 결코 남성들에게 짓밟히며 힘겹게 살아가는 희생자가 아닙니다.   여성을 비하하며 자신을 빛내려는 존재는 아주 못난 사람들입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는 얄팍한 수작에 불과하지요.


일제치하에서의 암울함속에서 찬란했던 조상의 얼을 되찾아 지혜롭고 당당함으로 세상을 구하는 존재로서 재탄생할 수 있도록 각성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으로 인해 민족종교라는 탈을 쓴 선구자들도 많았지요.   이때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한 여인들이 꼭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라는 탈도 필요없이 스스로의 삶을 멋지게 엮어나갈 수 있도록 한 여인들이 있습니다.


인정상관.   보통 인정상관이라 불리워지는 100여년 전의 여인이 있습니다.   어떤 민족종교 단체에서는 그녀를 '여처자'라 부르기도 합니다.   일제의 철저한 감시속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녀를 따르는 수만 여명의 사람들에게 사람이라는 존재의 위대함을 가르쳐 주며 자신의 삶을 꽃피우도록 말없는 가르침을 전했다고 봅니다.   지금도 전북 김제시 원평에 그녀의 터전이 보존되고 있지요.


인정상관을 스승으로 모셨던 여인이 있습니다.   어린시절에 인정상관의 사랑을 받으며 가르침을 받았으며 한 평생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지요.   '보기만 해도 낫는다'고 알려졌는데 60년대부터 15~6년 전까지 한국은 물론 미국 등 외국에서도 사람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했다는 미국의 유명언론에서도 전하고 있지요.   농부사학자로 널리 알려진 농초 박문기 선생이 그녀의 장남입니다.


그녀의 삶 자체도 기이한 행적이 많습니다.   저는 그 가운데 가장 훌륭한 점은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백합혈 따주기'로 건강회복을 통해 자신있는 삶을 주었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직업을 갖은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 건강을 얻었지요.   백학농원을 설립한 이유를 물었을 때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양성해서 전세계로 보내야 한다"며 몇 지점을 가리키며 교육장 설립을 말씀하시네요.    


당시의 여러 정황을 살피며 그 역할을 누가 할 것인지를 물었더니 의외로 저를 가르키며 "지비가 해야지..."라 하시네요.   전라도 사투리로 '지비'라는 것은 '당신'을 뜻합니다.   상당히 의외였지요.   그녀의 자녀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저를 지칭했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당시 저한테는 전혀 엉뚱한 말씀으로 들렸지요.   또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해법을 물었던 적이 있지요.


이때 8~7군데의 산을 말합니다.   산의 음양이 맞지 않았는데 2001년부터 맞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번 물으며 수첩에 적었던 산의 기운에 대해 그녀의 사후 자녀들에게 물었더니 아무도 모릅니다.   왜 저한테만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모르지만 저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측근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던 사람들을 이 글을 통해 만나고 싶네요.


최영단선생의 측근에서 틈틈이 말씀을 메모했던 사람 가운데 전 육군사관학교 장세안교수는 기억합니다.   장교수의 메모를 모았던 최영단선생의 말씀을 화일로 받아 샘바다까페에 50여개의 항목으로 올렸었지요.   도가수련을 연구하던 장교수의 세밀한 기록을 높이 평가합니다.   당시 부산에 살고있는 어떤 사람도 세밀하게 기록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역시 이 글을 인연으로 만나보고 싶네요.


제가 까페에 올렸는데 어제 살펴보니 회원들이 읽지 못하도록 묶어둔 것 같네요.   현대의학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의 인식과 상이한 의견도 있기에 회원들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려고 닫아둔 것 같습니다.   믿고 싶은대로 믿으려는 심리의식이 깊은 현대인들에게는 반발심이 심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도가수련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에게도 대단히 충격적인 내용도 있으리라 봅니다.   잘못된 수련법으로 수십 여년을 방황한 사람들이 진실로 올바른 수련을 원한다면 먼저 망가진 몸을 고쳐야 합니다.   이런 문제도 있어 차후 차라리 우수회원방을 개설해서 다시 공개하는 것도 생각할만 합니다.   단순하게 건강지식을 찾는 사람보다 간절한 사람들에게는 보약이 되리라 여겨져 아깝기도 합니다.


여건이 된다면 인정상관,최영단선생의 삶의 흔적을 더듬어 좋은 책으로 엮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십년 쯤 전에 백학농원의 활성화를 꾀하자는 점혈의 말을 듣고 첫 작업으로 꼽았던 것이 곧 최영단선생의 흔적을 책으로 엮자는 것이었지요.   지금도 50대 이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그리워한다고 봅니다.   그녀들의 삶은 암울한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희망을 주리라 봅니다.


그녀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종교적 탈을 싫어했다는 것이지요.   제가 본 측근 사람들도 마치 신처럼 예우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그녀들은 절대 반대했지요.   그래서 그녀들에 대한 제 이미지는 차라리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불과 몇 백명만 있더라도 군림하며 종교의 교주로 등극하려는 사람들이 있지요.   얄팍한 지식으로 세상을 호도하려는 사람들이 불쌍하기만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가장 기본으로 건강을 가르쳤다 봅니다.   저는 최영단선생으로부터 보고 듣고 배웠던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 곧 '백합혈 따주기'라 봅니다.   물론 백합혈 따주기라는 이름은 제가 붙인 것이지요.   바늘 하나로 피 한방울을 빼 주며 수많은 질병을 다스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합니다.   혈자리 하나도 모르더라도 백합혈 따주기로 건강해지기도 합니다.


제가 이익관박사를 존경할만 하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의술인들을 만나보았지만 한결같이 혈,경락은 물론 난생 처음 들어보는 어렵기만한 이론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말로는 불치병을 다 고칩니다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짜증나는 일이 많지요.   그들은 백합혈에 대해 전혀 기록도 없고 혈자리도 아니니 무시합니다.   그러나 이익관박사는 깜짝 반기며 칭찬했지요.


이익간박사는 까페의 글을 보고 600명에게 임상을 하며 놀랐다고 했지요.   모스크바 의과대학에 대해 사람들은 모릅니다.   저도 몰랐는데 많이 들었지요.   대학 3학년때부터 동양의학을 배운다고 합니다.   그 대학 출신을 보면 동서의학의 높은 활용에 대해 기절할정도로 높은 실력입니다.   감히 함부로 논해서는 안된다 생각됩니다.   이들 한결같이 백합혈 따주기를 칭찬합니다.


어제 활원운동에 대한 장교수의 글을 옮기며 생각나기에 한마디 적어 봅니다.


출처 : 샘바다문화연대
글쓴이 : 군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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