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백로야 웃지마라
제기동 약령시장,경동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분이다. 남들이 먹다 만 밥을 먹으면서 남으면 싸 가지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배 고프면 먹는다. 겨울에는 빌딩의 한켠에서 쭈그리고 잔다. 여름에는 나무밑 시원한 그늘에서 잔다. 동물적 감각으로 먹고 잔다. 가끔씩 허공에 대고 야단치듯 나무라는 말을 한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이분에게는 잘 보이나보다. 모르는 사람들은 헛소리를 한다 할지 몰라도 이분은 진지하게 대화를 한다.
비슷한 연령으로 보이는 한 여성도 경동시장,약령시장을 휘젓고 다닌다. 천하태평. 사람들은 고민도 많고 아픔도 많겠지만 이런 사람들은 아무런 고민도 없다. 그저 자신들의 삶을 영위할 따름이다. 세상에서 이들처럼 근심걱정없는 태평한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때와 장소도 필요없다. 글을 좀 적어보고 싶으면 아무데서나 적는다. 오늘은 사거리 횡단보도와 횡단보도의 사이에서 뭘 적고 있다. 전지에 장문의 글을 적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행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누구도 이런 사람을 나무랄 수 없다. 흉보는 사람도 실제 없다. 지난 겨울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봤지만 아무도 흉보는 사람이 없다. 지하철역 인근에서 한푼 달라며 엎드리거나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거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남들한테 돈 한푼 달라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먹을것을 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괜스레 시비도 걸지 않는다.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며 핏대 올리며 잘난체를 하는 인간들은 이런 사람들한테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누구한테도 시비하지도 않으며 시비를 받지도 않으며 오직 자신의 삶을 영위할뿐이다. 돈 몇푼 더 갖고 있다며 으시대는 저급한 인간들에 비하면 하나님 수준이지 않을까. 글자 몇 개 더 알고 있다며 폼 잡는 저급령들에 비하면 신적 존재가 아닐까. 어쩌면 겉은 좀 초라해 보일런지 몰라도 5장 6부는 투명한 유리알처럼 깨끗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마귀 검다하여 백로야 웃지마라.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알겠느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