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보다 높고 귀한 돈통
아마 25살 또는 27살 때쯤으로 기억됩니다. 군 전역 후 시골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외삼촌이 태인의 무당한테 놀러가자기에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달렸지요. 삼촌 따라 구경 간 겁니다. 둘이 대화를 마친 후 저를 보더니 아는체를 합니다. 집안문제가 어떻고 하니 푸닥거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때 돈 30만원을 들여 했습니다. 꽤 큰 돈이었어요. 집안에 얽히고 섥힌 문제가 있으니 풀어야 한다며 말하네요. 그때 처음으로 위아래로 하나씩 더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다 낳아 컸으면 우리는 10남매가 되는 것이지요. 어쨌든 무당집에서 푸닥거리를 할 때 보이지 않는 형제들이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더랍니다. 물론 전혀 보지도 않았던 할아버지,할머니도 오셔서 한마디씩 하셨다고 합니다만 무당만 아는 사실이구요.
이때 무당의 입을 통해 묻는 소원에 대해 겉과 속이 다른 대답을 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돈을 벌고 싶다는 바램이었는데 입을 통해 나간 말은 도를 통하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두 마음이 겹친겁니다. 도통하고 싶다는 것은 마음에서 단순하게 올라와 생각을 한 것이며 돈을 벌고 싶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강하게 올라오는 진실이었지요.
어린 마음에 도통하면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둘 다 얻고 싶은 마음이 솔직함이었을 겁니다. 도통보다 돈통이 더 욕심나는 것인데 마음을 속인다는 것은 참 괴로운 일입니다. 남을 속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자신을 속이는 것이잖아요. 그 말을 들은 조상님이 그 소원이 이뤄지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하며 떠나갔더랍니다.
항상 그렇지만 무당들의 푸닥거리에서 눈물을 빼면 헛공사입니다. 조상들이 나타나서 눈물바람을 하면 많은 돈 들인 후손도 죄송스럽고 고마운 생각이 들지요. 무당입장에서는 성공한 것입니다. 후손입장에서도 돈 들인 보람을 느끼구요. 그러면 둘 다 만족한 것이 되네요. 푸닥거리를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당당함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게 했던 사연입니다. 살아오면서 가끔씩 그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는 왜 조상들이 도와주지 않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이후 알게 된 것은 절대 조상들이 후손들의 살림살이를 풍족하게 해 주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돈을 말하면 마치 싸구려 장사꾼처럼 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는 사람의 마음은 맑지 못합니다. 진실한 사람들이 만나면 즐거운 이유입니다.
마음이 맑아지면 눈이 맑아집니다.
건강,행복으로 안내하는 길